1991년 2월 : 침묵의 시대, 외치는 자의 기록
전대미문, 희대의 사건이 터졌다. 여당인 민주정의당(노태우)과 제2당인 통일민주당(김영삼)과 제3당인 신민주공화당(김종필)이 합당을 선언한 사건이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이 합당을 선언하는 단 아래 좌우에 김영삼, 김종필이 마치 경호원처럼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었다. 참담했다. 그렇게 합당하여 생긴 민주자유당은 국회의석 3분의 2를 넘겼다. 개헌 발의 선까지 거머쥔 것이다. 국민을 향한 거부며 도전이며 사기였다.
그러나 교회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답답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1990년에 JㆍPㆍIC(정의ㆍ평화ㆍ창조 세계의 보전) 세계대회를 우리 서울에서 열었다. “정의ㆍ평화ㆍ창조세계의 보전”을 세계 교회의 신앙의 중심 과제로 삼자고 했다 한국 교회가 나서서 대회를 유치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 교회 스스로 일대 변혁을 이루어내겠다는 결의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 교회의 성장과 힘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은 충동이 더 우선했던 것 아니었을까? 그러니 대회를 이어내서 한국 교회에 어떤 변화를 추동해 나갈 리가 없다.
교회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일었었던 게다. 현실 교회가 과연 예수를 따를 수 있는 것인가? 나는 1990년 11월부터 기장 총회 선교교육원 원장 직을 맡았다. 어떻게 예수의 관심사로 교회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도대체 가능할까?
교회에서의 설교, 예배, 쇠귀에 경을 읽는 것과 같다. 설교하는 나 역시 그렇다. 답답하고 안타까웠던 것이다. 살자! 살자고 소리 지르고 싶었던 게다. 현장을 가지지 않는 신앙인이나 교회는 죽은 것과 같다.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낙산교회에 담임목사가 비어 있는 틈에 몇 주일 설교를 이어하게 되었다. 새로운 교회를 해 보자 하여 시작한 낙산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속단(?)이 나에게 있었던 것 같다.
내 속을 드러내 말씀 앞에 서고자 한 것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진심이었다. 내가 나에게 제기한 문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