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0:9-16] 스스로의 경계를 허물어라 - 1998년 5월 3일, 김상근 목사

9월 20, 2026

스스로의 경계를 허물어라

사도행전 10장 9~16절 / 서울교회


[회상 노트]

배성산 목사님이 담임목사인 서울교회 창립 40주년 기념예배 설교다.

한국 교회는 점점 늙어가고 있다. 젊은이들이 외면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없다. 단산(斷産) 된 집안 같다. 세대를 거듭하여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서지 않는다. 이유를 밝히고 싶었다. 나는 여전히 교회주의자인가?


[슬라이드]












[설교 전문]

서울교회의 창립 40돌을 축하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린다. 그 동안 이 교회의 믿음의 식구가 되었던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다. 목회하셨던 여러 목사님께도 하나님의 위로와 은총이 있으시기를 기도한다. 나와 서울교회와는 가느다란 인연이 있다. 배성산 목사님께서 이 교회에 부임하신 지 만 26년이 넘었다. 배 목사님을 청빙하는 공동의회 때 내가 공동의회 의장의 일을 맡았었다.

서울교회는 그 초기에 커다란 어려움이 있었다. 법정 분쟁에까지 갔던 것을 기억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목사님께서 시무하시게 되었고, 하와이 한인기독교독립교회, 세칭 하와이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서울교회라는 이름으로 가입하였다. 교회의 상처는 컸을 것이다. 겨우 그것을 싸맸을 즈음에 배 목사님께서 오셨을 것이다.

그때 우리 서울교회는 교회당 자체가 버려지다시피 된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보니 성전이 크게 황폐화되었던 때와 흡사했으리라 여겨 진다. 예언자들이 성전을 다시 일으켜 세웠던 것처럼 여러분께서는 덩그러니, 앙상하게 서 있는 이 교회당을 수리하고 다듬었다. 학개, 스가랴, 말라기 선지가 그랬던 것처럼 배 목사님은 성전을 수축하자고 했었다.

1970년대 초였으니까 모두 살림이 어렵고 넉넉치 못했으나 여러분 서울교회 교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성전 수축에 힘을 모았다. 성전을 수축한 일, 교회당을 개축한 것은 신앙을 중심에 세우려는 노력이었다. 그 토대 위에서 유치원, 청소년들을 위한 야학, 노동자 야학, 어린이집 사업을 펼쳐 왔다. 우리의 2세, 다음 세대의 교육에 일정하게 참여한 것이다. 이렇게 지내온 세월이 놀랍게도 40년이다. 30대 후반에 부임하셨던 배 목사님의 머리는 어느덧 백발이 되었다. 세월은 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교회는 영원할 것이다.

교회란 그저 거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때마다 교회가 나아가는 방향이 있다. 지난 시기의 말씀을 잠시 드렸지만 거기서부터 지금까지 서울교회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바로 서울교회는 2세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금후의 서울교회,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 창립 50주년 혹은 창립 80주년을 맞을 서울교회는 어떤 교회일 것인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40년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40년을 연상케 한다. 광야 생활 40년이란 준비의 기간이다. 서울교회는 그 40년을 지나왔다. 이제 가나안의 삶을 펼쳐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한국 교회는 여러 가지 이유로 위축되고 왜소화되어 가고 있다. 무엇보다 2세, 젊은 세대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 내가 최근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일하게 되었다. 여러분이 쓰는 찬송가, 성경과 합부한 찬송가도 출판하고 있다. 찬송가는 수십 종이다.

그 중에서도 아주 많이 찾는 찬송가가 따로 있다. 멜로디 큰 글자 찬송가라는 것이다. 악보가 4부로 되어 있는 것을 1부, 멜로디만 남기고 모두 없앤 것이다. 넉넉해진 여백에 가사를 주먹만 하게 인쇄한 것이다. 가사의 글씨가 상대적으로 작은 것, 곡이 4부로 된 것은 소비되지 않는다. 교회에 노인만 있고 젊은이들이 없다는 증거다. 한국 교회는 어느새 단산된 가정처럼 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예수를 먼저 안 우리가 우리의 2세들에게 그 예수를 전하고 알게 하고 만나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왜 그런가? 저들, 젊은이들은 예수를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판단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를 믿기에 부적합한 놈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머리하고 다니는 것 하며 옷 입고 다니는 것 하며 말투나 행동거지나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어른들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듣는 법이 없다. 제 주장을 내세우고 기어든다. 우리는 어느새 상대할 놈들이 아니라고 제쳐놓고 말게 되었다. 젊은 것들을 우리는 도대체 상대하려 하지 않는다. 오직 목사, 장로의 자녀들만 상대한다. 이것이 교회에 젊은이가 없는 첫째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 우리끼리 산다. 자식 없는, 그러나 금슬 좋은 부부처럼 우리끼리 오순도순 재미있게 산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처럼 교회에 젊은 것들이 없으니까 조용하고 편안하다고 느끼기까지 한다. 형님, 동생,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하면서 끼리끼리 산다. 주일예배, 주일밤예배, 수요예배, 금요일 구역예배, 목요일 성경 공부, 그 사이 사이에 심방 나가서 심방예배를 드린다. 물론 믿음 좋은 사람은 새벽기도회까지 간다. 그러고 보면 내내 교회 울타리 안에서 뱅뱅 도는 셈이 된다. 이것이 한국 교회, 가장 열심인 교회 교인들의 생활이다. 바로 이것이 두 번째 이유다.

세 번째 이유는 젊은이들은 아예 기독교 신앙, 교회 따위를 생각조차 안 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들은 당신들이고 우리는 우리라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젊은이들 세계를 정말 모른다. 그들의 속 깊이에 있는 고민, 고통을 모른다. 이해하려고도 안 한다. 그리고는 무조건 우리를 닮으라고 한다. 젊은이들은 숨이 막힌다. 이것이 무엇인가? 울타리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경계선이다. 그 안에서만 우리는 산다. 그 경계 밖으로는 절대로 나가지 않는다. 이것이 좋다. 편안하다. 젊은이들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아예 서로 상관이 없으니 편하다. 교회가 접근해 오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우리가 쌓은 울타리는 높아만 가고 경계선은 점점 더 확실해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렇게 사는 한 예수를 우리가 쌓은 경계 안에 가두는 결과가 온다는 것이다. 세상의 빛인 예수를 세상에서 이리로 모셔 와서 우리가 스스로 그은 경계선 안에 가둔다. 세상의 빛이 아니라 우리 교인들의 빛이 되어 달라고 한다. 역사의 주가 아니라 교인들만의 주, 만유 위에 계신 주님이 아니라 오직 교회, 우리 교인 위에 계신 주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그랬다. 자기들은 거룩하고 다른 민족은 속되다 했다. 하나님은 자기들과만 관계가 있지 다른 민족과는 관계를 가지시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소위 이방 사람들과는 상종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경계를 쌓아 올리고 그 안에 끼리끼리 살았다.

베드로가 기도하다가 환상을 본다. 하늘에서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내려온다. 그 속에는 부정한 것들이 가득 있었다.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먹어라.” 하는 음성이 들려 왔다.

“주님,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속되고 부정한 것을 한 번도 먹은 일이 없습니다.”

다시 음성이 들린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세 번 이런 일이 있은 후 그릇은 하늘로 들려 올라갔다.

베드로는 자기들 외의 모든 사람들은 부정하고 더럽다고 생각하였다. 경계를 세우고 유대인들끼리만 살았다. 우리들이 우리끼리만 살고 어울리고 더불어 생활하는 것과 같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베드로는 유대인이 아닌 고넬료를 만난다. 그에게 예수를 알린다. 그에게 세례를 준다. 자기들 유대인들이 스스로 세운 경계를 허문 것이다.

이제 서울교회는 40년을 지내 오면서 여 러분 스스로가 세운 경계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허물어 내야 한다. 나는 특히 2세들을 향하여 그어 놓은 경계를 허물라고 권고하고자 한다. 이것이 한국 교회가 시급하게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서울교회가 지향해야 할 내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40주년을 맞은 서울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바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오늘 권사로 임직하시는 여섯 분은 이 교회가 스스로 세운 경계를 허무는 데 목사님의 오른팔이 되어야한다. 젊은 사람이 있는 교회를 만들라. 젊은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교회를 만들라. 경계를 허물고, 경계를 넘어 젊은 사람들, 2세들에게 다가가는 교회를 다시 시작하라.

10년 후 창립 50주년에는 젊은이들의 교회라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한다. 성령께서는 이미 우리의 경계를 허무셨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경계를 허무시고 이미 가이사랴 고넬료의 집에까지 가셨기 때문이다.

서울교회의 제3의 역사를 일구어 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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