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2:49-53] 가정 - 그 부정성과 창조성, 1994년 5월 8일, 김상근 목사

9월 13, 2026

가정 – 그 부정성과 창조성

누가복음 12장 49-53절 / 낙산교회


[회상 노트]

그 해 1월이었다. 문익환 목사님이 돌아가셨다는 급보를 받았다. 창동에 있는 한일병원으로 달려갔다. 멀쩡하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문 목사님은 언제부터였던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던지셨다. 감옥 드나들기를 “신랑이 신부의 방에 들어가듯” 했다. 그분이 자신의 방에 써 붙힌 글귀다.

“나보다 아버지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합당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합당하지 않다”(마태복음 10:37).

주님의 가르치심이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는 심도(深度)에 언제나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그러하다 하더라도 가정을 온전케 하는 일 또한 버릴 수 없었다.

문익환 목사님이 감옥에서 나온 후 함세웅 신부, 지선 스님 그리고 나를 불러 ‘통일운동을 이제는 당신들이 나서서 하라’고 당부하셨다. 당신은 뒷방에서 통일맞이 준비를 하겠노라 했다.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당부를 부탁받은 나 외의 두 사람은 홀몸들이다. 내게는 가정이 있다. 아직 통일운동의 길은 험난하다. 나에게 있어 가정은 한없는 보금자리이지만 나를 묶어 놓는 말뚝이기도 했다.

그러셨던 문 목사님이 돌아가셨다. 그분의 부탁을 이제 물릴 수도 없다. 가정도 소중하고 민족 문제도 소중했다. 그 둘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났다.

나는 그즈음에 또 한가지 역사적인 일을 도모하고 있었다. 1980년 5ㆍ18 광주학살과 민중항쟁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이었다. “5ㆍ18 진상규명 및 광주항쟁정신계승국민위원회”를 결성했다. 나는 상임대표를 맡았다. 그러나 모든 언론이 외면했다. 국민들도 두려워하는 눈길을 줄 뿐이었다. 처음엔 너무 외로웠다. 우리 가정이 감당하게 될지도 모를 고난을 사실 더 두려워했다. 그러나 전두환ㆍ노태우 등을 정동년 등 피해자들이 고소하고, 김상근 외 293명이 고발하여 그들을 끝내 재판에 세웠다. 길고 어둡고 두꺼운 투쟁이었다.

가정주일에 하는 일반적인 설교였지만 사실은 내가 가지고 있었던 갈등과 질문에 대한 성서의 답을 내가 내 입을 통해 말하고 또 내가 내 귀로 들은 것이다.


[슬라이드]














[설교 전문]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 한다. 이미 가정에 대한 생각을 할 연세가 지난 분도 계시지만 지난 주일이 ‘어린이 주일’이었고,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다. 어린이 주일이라는 것도 일본과 우리나라 교회만이 갖는 날이다. 어린이 주일을 가지고 그 하루, 어린이를 높이고 또 어린이와 가까이 지내고 어린이를 세우도록 하자는 것 역시 그 배경에는 우리의 반어린이 문화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서양의 가정 주일 전통을 도입하되 어버이 주일로 성격을 바꾼 것 역시 그 배경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어머니 주일로 했다. 그러다가 어버이로 다시 바꾼 것이다. 하여간 가정보다 더 화급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어머니의 노고라고 여겼던 것 같고, 어머니 주일이라 한 것은 역시 반여성 문화가 그 배경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아버지의 위상도 문제라는 위기 의식이 작용한 것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어버이날을 정한 것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버이 자신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디 어머니의 노고만이냐? 아버지의 노고도 어머니 못지않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전혀 반대인 것 같다. 지금 어린이는 가정의 왕이다. 소년ㆍ소녀 가장도 있고 학대받는 어린이도 있고 고아원에서 자라야 하는 어린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말한다면 어린이는 가정의 왕이다. 부모들이 절절맨다. 그저 ‘그래, 그래’ 한다. 엄격한 금기가 있고 규제가 있던 시절에 자란 우리의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 왕 이상이다.

어떤 때는 우리 눈에 사뭇 거슬린다. 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무슨 놈의 애를 저 따위로 키우나?’ 이런 생각을 가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떼를 쓰면 부모가 꼼짝 못한다는 것을 안다. 오늘의 어린이들은 거절당하고 규제받고 그래서 자제해 본 경험이 없을 것이다. 어린이는 공부하는 것 빼고는 모두가 제 맘인데 어린이 주일까지 둘 필요가 있을까? 즐거움 중에 더 즐거우라, 그런 것인가?

가정도 그렇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가정제일주의가 아닌가? 가정이라면 벌벌 한다. 요새 남자들에게 어린이는 왕이고, 제 부인은 대왕대비 마마쯤 된다. 요새 가장들에게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아마 가정이라 할 것이다. 괜찮은 거다. 권위주의 문화가 깨진 거다. 가히 가정주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남자들만 별로 재미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아직도 여성, 아이들의 해방이 요원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만 이 교회에서는 이렇게 말해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 옛날에는 남편은 그가 어쨌거나 ‘하늘 같은 남편’이었다. 아이들에게도 아버지는 그런 존재였다. 출생 신분, 사회적 지위, 경제 능력에 따라 공경하고 경애하지 않았다. 남편이니, 부모이니, 못났더라도 지위가 낮더라도 공경했다. 경애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회적 지위도 높아야 하고, 특히 경제 능력이 있어야 존경받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남자들은 직장에서 사회에서 돈을 벌고 지위를 높이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는 것이다. 삶의 속을 들여다보면 가정에 매인 것이다.

시대가 여기에 이르게 되면 가정 외에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눈이 가정에 붙들려 있으니 가정 외의 것이 보일 리 없다. ‘가정이 편안하면 그만’이라는 소시민적 행복감 속에 매몰되는 것이다. 공동선, 정의, 평화, 이런 것이 보일 리 없다. 혹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을 위해 일하게 되지는 않는다. 시간을 내고 돈을 내는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격언은 작은 나쁜 짓이라도 그것이 곧 큰 나쁜 짓을 하게 되는 출발이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그 말에서 전혀 다른 적극적인 뜻을 찾을 수도 있다. ‘정의, 평화 등을 위해 나를 주고 내놓는 일은 아주 작은 일일지라도 해볼 때에야 가능하게 된다’는 뜻으로 원용할 수 있을 것이다. 천리를 가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나 한 걸음을 떼고 그리고 또 떼고 또 떼고 보니 천리를 가게 되는 것이다. 나를 주어보고 시간을 내보고 돈을 내보고 그래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첫걸음을 꽉 붙들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가정이다. 예수에게도 가정 문제가 심각했던 것 같다. 33세가 되도록 결혼을 안했다면 그것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대단히 특이한 경우다. 결혼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예수는 일찍이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 요셉이 언제 사망했는지 기록이 없으나 여러 정황으로 보아 아버지가 생계를 꾸리는 정상적인 가정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30세가 되도록 결혼도 안 하고 생업에 종사한 것은 그가 가정을 그만큼 소중히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생계를 꾸리면서도 진리의 삶, 민족의 문제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삶, 더 넓은 삶, 하늘의 뜻을 좇아 사는 삶을 지향하고 있었다. 가정과 이른바 공생애 사이에 갈등했다. 이런 그의 갈등은 성서 여기저기에 나타나 있다.

공생애 초기에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한 형제자매들이 예수를 찾아왔다. 이 일을 제자들이 전했을 때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가 내 어머니며 형제들이냐? 그리고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 다’”(막 3:33-35).

그러나 그 예수는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할 때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 십자가 곁에 있던 마리아를 한 제자에게 부탁하셨다. 성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 다음에 제자에게는 ‘자,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로부터 그 제자는 그분을 자기 집으로 모셨다”(요 19:26-27).

여기 예수에게서 가정을 소중하게 여긴 것과 그 가정이 더 폭넓은 삶을 가로막고 있었다는 두 면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아니, 예수는 급기야 가정의 분열을 부추기기까지 하셨다. 식구들끼리 맞서는 상황,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갈라지는 상황을 일으키신다.

“이제부터 한 집안에서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서, 셋이 둘에게 맞서고, 둘이 셋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맞서고, 서로 갈라질 것이다”(눅 12:52-53).

자연히 그렇게 된다는 뜻이 아니다. 소중한 가정이지만 더 넓은 삶을 가로막는 요인이라면 진통을 겪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가정의 갱신이요 가정의 위상, 내용을 바꾸어 내야 한다는 말씀이다. 가정이 감옥이 되고 착고(着錮)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가정이 있어서 더 나은 삶, 더 넓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러한 가정으로 질적 변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식구 모두의 삶의 증진을 위하여 토의하고, 가진 것을 비록 조금이라도 나누자는 결단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높은 뜻이 있으면 그 뜻을 이루어 가도록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가정에서 용기를 얻고 힘을 얻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뒤로 물러서고 싶으나 가족들의 성원에 힘입어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그런 가정을 창조해 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가정을 이루어내야 한다. 잠언 17장 1절은 대단히 간단하고 상식적인 가르침이지만 여기에 철학이 있다.

“마른 빵 한 조각을 먹으며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진수성찬을 가득 차린 집에서 다투며 사는 것보다 낫다.”

이런 철학을 넉넉하게 공유하는 가정은 화목하다는 표현 이상의 가정이다. 우리는 이런 가정을 이루기 위해 어떤 모양의 분열을 야기시킬 수도 있어야 한다.

교회도 하나의 가정이다. 가정의 모양을 갖추어야 한다. 아버지들도 있고 어머니들도 있어야 한다. 형도 누나도 아우도 있어야 한다. 모두가 우리 식구라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몇 되지 않는 교인들인데 누가 누군지, 뉘 집 아이고 어떠한지 모르기도 하고, 서로 상관도 하지 않는 풍토라면 믿음의 가족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2세들을 위해 이런저런 배려도 함께 해야 한다. 신앙 공동체란 그래서야 붙일 수 있는 이름이다. 내 집의 자식을 위해서는 돈을 펑펑 써도 교회의 2세들에게 신앙을 전수하고 바르게 성장케 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안 한다면 그 교회에 장래가 있을 리 없다. 출세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바른 삶을 세우기 위한 투자와 계획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교회가 하나의 게토가 되게 하자는 것은 아니다.

잔잔한 소시민적 안정과 행복 속에 빠지면 바른 교회가 아니다. 여기서 서로 힘을 얻고 주며 용기를 얻고 주는 그럼으로써 더 높고 깊은 삶으로 나아가게 되어야 한다. 공동체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분열과 맞섬은 평화를 창조하는 첫발이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교회에서, 평화에의 첫 걸음, 그것이 아픈 걸음일지라도 걸어야 하는 걸음이라면 걷고 끝끝내 평화에로 나아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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